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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P 5차시] B조 큐시트 및 대본


<B조 대본>

 

[오프닝멘트]

두디 : ~동대문 열렸습니다. 오늘은 1015일 목요일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이문동 두디, (회기동 박하입니다! ^^)

오늘도 동대문 곳곳의 핫플레이스들을 소개하고 동대문 사람들을 만나보는 시간을 가져볼게요.

먼저 노래 듣고 올게요.

 

 

[브릿지멘트]

박하 : 첫 곡으로 10cm10월의 날씨 듣고 오셨습니다.

쌀쌀해진 밤바람 맞으며 거리를 거닐며 듣기 좋은 노래인 것 같아요.

 

두디 : 그렇죠.

박하:! 저희 동대문을 열어라 새로운 게스트들과 함께 문을 열어 볼게요.

오늘도 동대문에 사는 두 분의 게스트가 찾아주셨어요. 두분 소개 좀 부탁드릴게요.

 

DJ : 안녕하세요. 북태원 사는 쏭입니다.

근식 샘 : 안녕하세요, 김근식입니다.

(근황 토크)

 

그럼 노래 듣고 와서 본격적으로 코너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의 동대문 산책]

1. 평화의 전당에 숨겨진 설립역사

2. 경희대에서 제일 싼 까페는? (호텔관광대학교 지하1층에 학생들이 하는 까페 : 늘품, 전 메뉴 천원대 )

3. 가보셨나요? 숨겨진 산책로 미대길.

4. 봄날, 벚꽃 전경을 보기 가장 좋은 장소는? (생과대 옥상, 미대옥상)

5. 알고 계셨나요? 경희대에도 연못이 있다는 사실 ! (본관 뒤, 경희 초등학교 앞)

6. 경희대학교 박물관 (유학 다녀온 빗살무늬 토기에서 부터~ 근 현대역사 까지)

7. 파전 골목에 대하여.. (박하 디제이의 가장 맛있는 파전집 추천 타임)

 

   

[사연 1]

안녕하세요. 저는 경희대에 다니는 학생입니다. 제가 이렇게 사연을 쓰게 된 이유는 동네 여러분께 외대와 경희대 학식에 대해 소개해 드리기 위해섭니다. 솔찬히 말씀드리자면 외대 학식을 찬양하는 목적이 될 듯싶습니다. 하하하 음~ 제가 사는 곳은 경희대랑 외대 중간쯤입니다. 그래서 식사를 해결해야 할 때면 저는 두 학교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물론 승자는 대부분 외대 학식이 됩니다. 왜냐? 외대는 일단 쌉니다! ㅋㅋㅋ 외대는 제일 비싼 메뉴가 2,200원이고 가장 싼 메뉴는 1,000원이거든요. 특히 토스트는 정말 먹을 만 한데 1,000원 밖에 안 해요. 어디 가도 상상도 할 수 없는 가격이죠. 가까운 경희대를 예로 들면 가장 저렴한 메뉴.... 가격은 잘 모르겠지만, 비싼 건 4.000원이 넘는 가격도 있습니다. 뭐 물론 일반적인 식사 가격에 비해서는 무지야게 쌉니다.그러나~ 주머니 사정이 뻔한 학생이야 단 돈 일원이라도 아끼고 싶은 마음 아니겠어요? 게다가 외대 2,200원과 1,800원 메뉴를 선택하게 되면 일단 양이 많습니다. 우선 배는 확실히 채울 수 있는 거죠. 맛은 그때그때 다르지만 뭐 돌도 씹어먹을 나이에 뭐든 먹는 거면 다 맛있다고 해야 하는 거 이니겠어요. 얼마 전에는 그 유명한 외대 2,200원 수제 치즈 돈가스를 먹었습니다. 솔직히 유명한 거에 비하면 맛은 별로더라고요.ㅋㅋㅋ 그렇게 보면 경희대가 더 맛있긴 한거 같긴 하네요~ 가격이 한 1.5배쯤 비싸서 그렇지. 아무튼 제가 사랑해 마지않는 외대 학식은 굳이 가격과 양에만 메트리가 있는 게 아닙니다. 맛은 제 입맛에는 복불복인 메뉴들이 나오지만, 눈이 호강합니다. 사실 어디 학교를 가도 뻔한 한국 사람들인데, 외대 학식은 예쁜 누나들이 많아요. 아메리카, 유럽, 아프리카, 중동 등등 역시 사람은 넓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밥 먹을 때마다 하게 됩니다. 물론 멋진 형들도 많이 있습니다. 흑형, 백형, 아랍형 뭐 종류별로 많죠. 저번에는 밥 먹고 나오는데 흑형들이 정장 입은 모습을 봤는데, 진짜 멋있긴 멋있더라고요. 그래서 여러분도 외대 학식에 오신다면 금발 아가씨와 눈빛 같은 거 교환하면서 식사 가능하니깐 마음에 흡족함이 채워 지실 거고요. 마지막으로 이게 우리 학교가 아니니깐 그냥 좋습디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그래서 그런 건지 왠지 외대 학식이 좋네요. 뭐 행간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외대생들만 밥을 먹어야 한다고는 하는데, 뭐 사람 사는 게 다 서로 도우며 살아가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학식 운영하면서 적자는 안 날 테니깐 가서 사 먹어주면 뭐 피차 좋은 게 좋은 거죠~라고 저는 생각하려고요. 하하. 그래서 제 꿈은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경희대 말고 외대에 밥 먹은 만큼은 장학금을 기부하는 거랍니다.^^ 아무쪼록 어중이떠중이 떠드는 동네 주민 이야기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라도 저랑 눈 마주치진 말기로해요 ^^

 

 

[사연 2]

취업준비생 시절 거듭된 불합격 속에서 단비처럼 최종 면접자로서 발표된 날이 있었습니다. 발표 당일에 2차 면접까지 합격한 기쁨에 신나게 놀고 그 다음 날부터 다시금 면접 준비를 하기 위해 학교 앞 단골 대폿집에 갔습니다. 단골이라 사장님과도 평소 친분이 있었는데, 제가 최종 면접까지 올라갔던 이야기를 들으시고서 최종 면접도 합격하면 저를 포함해 7명에게 고기를 무료로 주시겠다고 공약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최종 면접일과 합격자 발표일을 사장님께 알려드렸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합격자 발표일이 다가왔습니다. 대부분 합격자 발표가 그렇듯이 저녁 6시가 되기 전까지 발표가 날 움직임이 도통 없었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면접을 잘 봤다고 생각했기에, 빨리 합격자 발표를 보고서 친구들을 불러 술 한 잔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7시가 되고 8시가 되도 발표가 나지 않았습니다. 9시가 다 되서야 발표가 났는데... 결과는... 불합격이었습니다. 대폿집 사장님과 약속한 합격이 아니라 불합격이니, 대폿집을 갈까 말까 하다가 저는 10시쯤 혼자서 대폿집에 갔습니다. 제가 혼자 온 것을 보시고서 사장님께서는 12시가 마감 시각이었지만 미리 셔터를 내리시고 저와 술자리를 하셨습니다. 사장님은 불합격이더라도 친구 1명까지 고기를 살테니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1년 넘게 다니던 대폿집이었지만 그 날처럼 사장님과 많은 이야기를 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장님께서 젊었을 적 사업에 성공한 이야기부터 주식으로 돈은 잃은 이야기까지 해주시면서 취업이 전부가 아님을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렇게 그 날 저는 만취 후 다시 다음 날부터 다른 회사 서류 지원부터 초심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서류의 자기소개서에는 이 대폿집과 얽혀있는 학생회 회식, 아르바이트, 취업준비 시절 등 다양한 사연들을 썼습니다.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낙방 후 몇 주만에 새로운 회사에 합격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사장님은 그 가게의 장사가 잘 돼 권리금을 받고서 엑시트를 하셨습니다. 지금은 제주도에서 장사를 하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4년 전 이맘 때가 생각납니다.

 

 

[사연 3]

동대문을 열어라! 그런데 동대문구에는 동대문이 없다는 사실! 왜일까요. 사실 동대문은 닉네임이고요, 흥인문이 원래 이름이지요. 조선 태조 이성개가 4대문을 달았을 때에 당연히 흥인문은 한양에 있었죠. 그런데 지금 동대문구 지역은 조선시대에는 고양군이었습니다. 한양이 한성, 경성, 서울이 되면서 흥인문은 종로구로 되었고, 지금의 동대문구가 서울로 편입되면서,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청량리, 경기도 고양군 이문리등에서, 서울시 동대문구 청량리동, 이문동등으로 바뀐 것입니다. 즉 동대문구는 고양군 중의 서울 동대문에 가까운 일부를 동대문구로 부르기로 한 것이지요.

 

문의 이름이 동대문은 원래 흥인문이쟎아요. 동서남북 문을 이성개가 이름 지을 때, 맹자 4덕 인의예지를 붙였습니다. 동쪽은 흥인문, 서는 돈의문, 남은 숭례문, 북은 홍지문으로 명명했습니다. 흥인문의 인은 측은지심을 뜻하는데, 남의 아픔을 측은히 여기고 서로 돕는 마음을 흥케 하라는 뜻입니다.

 

지금은 흥인문이 아니라 흥인지문이죠. 동대문이 서있는 자리가 잘 아시다시피 매우 지대가 낮은 지역에 서있죠. 그래서 수해가 자주 났답니다. .지 자는 산맥의 모양을 하고 있는 글자인데, .지 자를 넣어서, 수해를 막고자 흥인문을 흥인지문으로 바꾸었습니다.

 

동대문을 열어라! 동대문은 그럼 몇시에 열까요? 10시반에 닫고, 새벽 4시반에 열었습니다. 이 문이 닫히는 시간을 야간 통행금지시간이라고 했는데, 이 통금은 조선시대부터 쭉 이어져서 해방후에도 치안의 용이성을 목적으로 유지하다가 신체의자유 등의 권리를 이유로 198215일 국무회의에서 경기, 강원도의 휴전선 접적지역과 해안선을 낀 면부들을 제외한 전국일원의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되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정책의 하나로 통금해제를 하였습니다. 198811일에는 제외되었던 나머지 지역도 통금이 해제되었습니다. 명절, 성탄절, 년말에 새해아침까지 통금을 일시 해제하였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국경부근과 도성의 야간통금을 실시하였습니다. 시간은 인정(오후 1030)에서 파루(오전430)까지였습니다. , 정월 초하루, 정월대보름은 행사를 위해 야간통행을 허가하였습니다. 여러분 어릴 때 술래잡기 많이 하셨죠? 술래는 순라에서 나온 말인데요, 조선시대의 순라꾼은 야간통금 시간에 순찰을 돌던 요새 방범대원 같은 사람을 뜻합니다. 보신각에서 통금 시작과 해제의 종을 쳤는데, 보신각에서 동쪽으로 직진하면 동대문이 나오고, 신설동 지나 용두동, 제기동, 청량리까지 계속 직진하면서 동대문구가 펼쳐집니다. 이 길이야 말로 서울로 가는 길목이고, 관문로이고, 물류의 동맥입니다. 동대문구는 역사적으로 한양, 서울의 풍요롭고도, 중요한 물자의 공급로 이고 젖줄입니다.

 

통금 얘기를 더해보면, 제주도와 충청북도는 통금이 제일 먼저 없어졌습니다. 1965년에 충청북도의 통금이 해제되었는데, 조치원과 오송은 접경지역인데, 조치원은 충남 세종시이고, 오송은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입니다. 그래서 조치원에서 술마시다가 통금시간이 되면 오송쪽으로 옮겨서 마셨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엔, 통금이 없었기에 많은 시민들이 명동으로 쏟아져 나와서 자유를 만끽하고 성탄을 축하하고 밤새 술을 마셨죠.

조선시대의 인정은 인경이라고도 하는데 하늘을 지키는 28개의 별자리를 상징한 것입니다. 통행금지를 알리기 위하여 밤마다 치던 28번의 종을 말합니다. 파루는 바라 라고도 하는데, 불교의 수호신인 제석천이 이끄는 하늘세상인 도리천(33)에 닿으려는 꿈을 담고 있어서, 나라의 태평과 국민의 편안함(국태민안)을 기원하기 위해서입니다. 파루는 통금을 해제하기 위해 치던 33번의 종을 말합니다. 인정이후에는 딱딱이를 든 순라꾼들이 순찰을 돌았습니다. 종은 보신각에서 쳤습니다. 종로와 남대문로가 만나는 곳에 종각을 설치하였습니다



B조 큐시트 대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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